유리 예고로프의 이탈리아 일기 1976
[원제 : Youri Egorov - His Complete Original Diary, Italy 1976]
유리 예고로프가 러시아에서 망명 후 뿌리 내린
암스테르담에 꼭 가보고 싶어요. 그의 명연주는 거의
다 암스테르담 시기에 이뤄졌어요. 비록 불치병으로
인한 짧은 삶이었지만, 이 연주자의 위대함을 직접
그 도시에 방문하여 몸으로 느껴보고 싶어요.
_임윤찬
실제 사실과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된 위대한 책
_블라디미르 예고르프 Vladimir Egorov
음악과 삶을 위해 자유를 열망했던 22살의 피아니스트,
유리 예고로프의 망명일기
1976년 이탈리아 현대국제음악축제에 초청받은 예고로프는 연주장 대신 로마의 경찰서로 들어가 망명을 요청한다. 22살의 젊은 피아니스트, 이탈리아 현대음악축제에 주최측이 추천한 연주자 대신 소련 대표로 선정될 만큼 미래가 보장된 유리 예고로프가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네덜란드에서 빔 더 한이 펴낸 『Youri Egorov - His Complete Original Diary유리 예고로프-그의 완전한 일기원본, Italy 1976』은 제목 그대로 피아니스트 유리 예고로프가 로마 근교의 난민 수용소에서 써내려간 한달 간의 일기를 원본 그대로 담은 책이다. 맞은편엔 동향 친구인 클레어 오볼렌스키가 러시아어에서 번역한 영문이 실려있고 연기처럼 사라진 소련 피아니스트의 행방에 관해 연일 대서특필된 이탈리아 일간지의 기사들도 날짜 순으로 수록되었다. 1970년대는 전세계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으로 첨예하게 나뉘어 대립하던 냉전시대였고 소련 유명 피아니스트의 실종은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망명이 승인되기까지 갇혀있던 수용소에서의 한 달은 지옥같은 시간이었다. 가족에 대한 걱정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의 가슴은 타들어갔다. 막막한 심정을 풀길 없어 신에게 애원하고 매달리며 손바닥만한 일기장을 가득 메운 글씨가 그의 몸과 마음처럼 떨고 있다. 이 일기장이 사후에 거실 액자 뒤에서 발견되었다. 생전에 망명에 얽힌 자세한 사연을 누구에게도 공개한 적 없는데 가장 고통스런 시간이 담긴 일기장만은 차마 폐기하지 못한 것이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그의 표현대로 ‘드뷔시와 사랑에 빠질’수도 없었을 테니까.
누군가의 허락을 구하면서 어떻게 꿈을 꿀 수 있나
엘리제 마흐Elyse Mach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소련을 떠났던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 이유로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연주하고 싶은 음악을 맘껏 연주할 수 있는 자유, 몸과 영혼의 자유로운 상태로 펼치고 싶은 음악에의 꿈... 철의 장막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동성애는 범죄였고, 5년이상의 감옥생활, 정신병원 감금, 무엇보다 피아노를 칠 수 없을 것이란 두려움이 가장 컸다고 했다. 이 피아니스트에게 음악과 삶은 별개가 아니기에 목숨처럼 여기는 음악을 위해 숨막히는 삶을 구해내야 했다. 인터뷰 말미에 멀지 않은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제가 이 지구에서 사라지면 사람들이 저에 대해 나의 언어, 나의 통로인 음악으로, 시적인 의미에서 좋은 소리를 가진 피아니스트로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재능이 있는 사람은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있는데, 저도 이전에 살았던 많은 예술가들과 재능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죠. 또한 ‘저보다 앞서 걸어가는’ 동시대 예술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고통의 끝에서 나온 영혼의 연주
망명이 승인된 후, 유리 예고로프는 네덜란드에 정착했고 1978년, 반클라이번 콩쿠르에 참가해 이변을 일으켰다. 결승에 오르지 못하자 성난 관객들이 1등 상금 10만불을 모아 뉴욕 데뷔를 후원한 것이다. 그 해 말, 카네기홀 무대는 그의 이름을 클래식팬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단 1년만이라도’ 자신만의 삶을 살며 자신만의 예술을 펼쳐내고 싶었던 예고로프가 자유를 ‘승인’ 받기 위해 치룬 댓가는 가혹했다. 평생 가족을 만나지 못했으며 위대한 스승 야코프 자크가 그의 망명때문에 지독한. 고문으로 죽었다는 자책감을 견뎌야했다.
예고로프의 연주에 대해서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Maria Joao Pires는 이런 말을 했다. “그의 음악에선 테크닉을 느낄 수가 없다. 왜냐면 그는 연주하는 음악 그 자체가 되는 능력의 소유자이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건, 고통을 감내하는 그의 능력이다.”
음악 자체가 되는 능력은 고통을 통해 이루어졌고 그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던 비밀은 오직 그의 음악 속에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생전 그가 남긴 유언같은 바람은 어긋남 없이 실행되었다. “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음악만을 위해 산 사람으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유리 예고로프의 유산을 온전히 전하는 일
이 책은 일기원본과 기사외에도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985년이 되어서야 발급된 정식 여권, 1976년 밀라노발 모스크바행 비행기 티켓 등 리 예고로프가 남긴 유품들로 만들어졌다. 저자 빔 더 한은 유리 예고로프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생전 연주 레퍼토리, 발매 음반, 실황녹음기록, 주요 리뷰들을 모조리 수록한 <Youri Egorov - The Complete Discography>도 발간했다. 유리 예고로프가 지상에 남긴 흔적과 기록들을 온전히 보존하고 그래서 그의 음악이 선사한 가장 내밀하고 너그러운 공간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하는 저자를 보면, 음악은 연주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구원이자 생명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판은 2008년, <Youri Egorov : The Master Pianist> 앨범에 수록된 파르한 말릭의 해설, 클래식 리뷰 매거진 《그라모폰》 2020년, 8월호에 게재된 팀 페리의 리뷰를 추가로 실었다. 기꺼이 게재를 허락해 준 두 분에게 감사드린다. 누구보다 빔 더 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유리 예고로프에 대한 그의 헌신이 없었다면 이 진귀한 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차례
I 들어가는 말
II 1976년 5월13일 - 19일
III 유리의 이탈리아 일기 1976년 5월19일 - 6월 15일
IV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 1976년 5월 18일
V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 1976년 5월 19일
VI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 1976년 5월 20일
VII 사진: 파르파 수도원의 유리 예고로프
VIII 일간지 《일 템포》 1976년 6월3일
IX 후기
X 저자의 생각
XI 기 뒤사르의 이메일
XII 클레어 오볼렌스키의 이메일
XIII 파르파 수도원
XIV 비행기표 원본
XV 유리 예고로프의 네델란드 여권
XVI 리뷰 : 파르한 말릭
XVII 리뷰 : 팀 페리 《그라모폰》
XVIII 유리 예고로프 소개
XIX 옮긴이의 글
XX 저자 및 옮긴이 소개
저자 소개
빔 더 한 Wim De Haan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빔 더 한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비범한 음악명인 유리 예고로프를 알게 되었다. 그를 잊지 않기 위해 2015년에는 유리 예고로프 웹사이트(https://www.youri-egorov.info)를 만들었다. 네덜란드의 한 대학병원에서 생의학 엔지니어로 일하며 미국의 저명한 오디오 잡지 《스테레오필》에서 이달의 음반으로 선정한 피아니스트 에벨리나 보론초바Evelina Vorontsova의 라흐마니노프 전곡 CD 녹음 제작에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다.
박태희 (옮긴이)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필립 퍼키스에게 사진을 배웠다. 사진은 평생의 작업이라 여기며 만들고 싶은 책을 스스로 만들고자 안목출판사를 설립했다. 저서로 『사막의꽃』과 『사진과책』이 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등록일 |
작성된 질문이 없습니다. |
유리 예고로프의 이탈리아 일기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