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rooklyn,Queens,Jersey city.
이들 지역이 제게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쩔 수없이 제 생활의 자리가 이러한 곳이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
렇지만 편벽된 저의 기질에 맞는 무엇인가가 이들 지역, 어느 곳엔가에 있다고는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이면 항상 지나려 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지 그곳에 오래되어서 색이 바랜, 조그만 철문이 있기 때문인데요. 어쪄면 조잡하다고 할 그 문에서 항상, 감동을 받곤해요. 이유를 모르면서도 자극 받고 그냥 설레이는 거죠. 시간이 무언가를(색깔, 모양, 구조… 환경)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면서 지적인 형태로 만들낸 것이 아닐까하는 막연한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공장 주변에, 그 길가에 제가 좋아 하는 엉성한 얼굴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버려진 것들, 시대에 뒤떨어진 것들,어설프게 마무리된 것들, 대강대강 지어진 것 처럼 보이고 대충대충 기워낸 것처럼 보이는…. , 그런 표정을 가진 것들입니다.”
p135, 명료한 오후, 서영기
몇 년 전에, 나는 예루살렘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느 저녁, 유대교 성지인 웨스턴 월에 갔을 때, 그곳에 살고 있는 종교인을 만나서 우연히 우주탐사에 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우주탐사가 활발하던 시기였다.) 잠시 후에 그는 우리 모두가 대단히 큰 일들이나 사건들 속에서 기적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피면서 기적은 바로 이처럼 단순한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말했다. 그 순간이 내 삶을 바꿨다. 몇 년 후에, 나는 서영기를 만났고 그의 사진을 지켜보게 되었다. 서영기의 사진은 가장 평범한 대상들을 명확하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들은 우리가 결코 특별하게 여겨본 적 없는대상들이며 하루에도 무수히 지나치는 모습들이다. 서영기의 행위는 가장 평범한 장면이 의미를 지니게 되고 심지어 인간 조건을 드러낸다는 것을 가혹할 정도의 정밀한 시선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 P3, 명료한 오후, 필립 퍼키스
버지니아 울프는 풍경화를 오래 들여다볼 때 우리가 공포를 느끼게 되는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자연의 영원성은 인간의 유한함을 자동으로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휴머니스트가 아닌) 서영기의 사진도 그러한가?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자신 있게 무슨 주장을 하거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 인물들은 불안하고 어정쩡하고,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잉여의 존재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도시인들 영원할까? 레고 블록을 이렇게 저렇게 조립해놓은 것 같은 이 거리를 보노라면 지진이 상상되지 않는가? 화면 하단을 시원하게 반분하고 차지한 밝은 길바닥들은, 쩍쩍 갈라져나가는 지각을 한껏 상상해보라고 유혹하는 캔버스 같다. 도판1의 세 사람은 지진으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그만 중심을 잃어 비틀거리고 -
건물 벽에 사다리를 세우려고 애쓰는 세 사나이(도판5)도 버스터 키튼 영화의 인물처럼 중심 못 잡고 종종걸음으로 왔다 갔다 한다. 신전 외벽의 균열을 눈가림하려고 페인트칠하는 사제들인가, 애처롭도록 숭고한가 하면 우스꽝스럽게 비참하다.
서영기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내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이유가 피사체로부터 충분히 멀리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P8-9, 명료한 오후, 박찬욱
안목리뷰
2010년, 1월, 뉴욕에 갈 일이 있었다. 가는 김에 서영기 선배의 사진을 보리라 작정했다.
대학 사진 동아리 선배이자 나와 같이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던, 프랫 예술대학원까지 함께 다닌 그는 나와 사진이라는 공통분모로 참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셈이다.
사실 그의 졸업 후 행로가 ‘목수’였던 것은 별반 놀랄 일이 아니었다. 유학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들었던 우스갯소리 중 하나가, 공항에 누가 마중 나오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로가 정해진다는 거다. 당시 선배를 마중 나온 사람은 목수였고, 그래서인지 그는 유학 생활 내내 줄곧 목수 일로 아르바이트를 해온 터였다.
게다가 진로를 정하는 데 있어서 선배에게는 두 가지 확고한 신조가 있었는데 하나는 몸으로 하는 일을 하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좋아하는 일로 마음에 맞지 않는 밥벌이를 하며 돈을 벌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사진으로 돈을 번다는 건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니까 말할 것도 없고, 목수야말로 몸으로 하는 일이니 그에게는 천직이 따로 없는 셈이었다.
그렇게 우린 각자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미국을 떠나온 2004년 이후로 우리는 거의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작년에 그나마 며칠이라도 그의 삶을 방문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주어졌으니, 그동안 소식으로만 듣던 그의 사진에 대한 궁금증으로 한껏 부풀었다.
그 소식을 전해준 필립 퍼키스(Philip Perkis) 선생님은 선배의 사진에 대해서 단 두 구절로 말씀하셨다.
영기처럼 슬프고, 영기처럼 아름답다.
영기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사진이라... 목수로 일하는 퀸즈 공장에서 점심시간 동안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나와 공장 주변을 찍은 사진들이라고 했다.
그의 사진들 속에는 햇빛 짱짱한 거리에 행인들과 우체통과 개와 공사장 인부들과 집과 차 같은 것들이 드문드문 있을 뿐도저히 눈을 씻고 찾아봐도 멋지거나 눈에 띄는 대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사진들을 계속 보고 있자니 아무도 서로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우리의 삶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길가의 쓰레기 봉투, 기우뚱 걸어가는 남자의 구겨진 점퍼, 상처난 피부처럼 페인트 칠이 벗겨진 벽, 텅빈 거리와 햇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이토록 명백하고 아름답게 자신을 드러내는데 숨기고 싶은 것은 죄다 내 맘 속에 있구나. 눈물이 났다. 난 이 사진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일 년 후에, 지인들의 도움으로 책이 만들어졌다. 필립 퍼키스 선생님과 박찬욱 감독님이 서문을 자청해주셨다. 제목은 명료한 오후라고 지었다. 필립 퍼키스 선생님이 한국에 오시는 일정에 맞춰서 <명료한 오후> 출간과 더불어 소소갤러리에서 3인전도 열게 되었다.
전시회가 열리기 이틀 전, 선생님과 서영기 선배를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지나온 과거부터 여전히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머나먼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삶이 두루마리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영기선배의 사진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삶.
박태희
제목 : 명료한 오후
저자 : 서영기(사진, 글) / 필립 퍼키스, 박찬욱 (서문)
판형 : 260*210mm
영문번역 : 이정현
디자인 : 박재현, 박태희
출판사명 : 안목
출간일 : 2011년10월8일
페이지수 : 160쪽
정가 : 25,000 원
ISBN : 978-89-96246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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