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 irreducible quintics 를 번역하면 기약오차다항식이라고 한다. 수학자가 되길 원했던 신정현은 직접 붓으로 자신의 첫 사진책에 irreducible quintics라고 썼다. 글자들은 마치 지평 저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날라갈듯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생명처럼 보인다.
“수학자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미국 중서부의 옥수수밭 한가운데서 인생의 몇년을 허비했다.”
인생의 몇년을 옥수수밭에서 허비한 후에 뉴욕에서 6개월동안 흑백 필름으로 찍은 사진과 글이 78페이지에 실려있다. 허비했다는 단어를 선택하면서 사진가는 암시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누설하고 있다. 과잉된 미래를 포기한 이후의 시간, 독자는 책과 더불어 한 때의 그 시간과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도시를 배회하는 눈 하나가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며 자국을 남기는 것을 보게 되고, 지치고 텅빈 기분을 느끼다가도 곤혹스러울 정도로 친밀한 감정이 몰려드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웅크린 정신은 어둠에서 나와 어둠으로 사라지며, 출구 없는 공간의 이쪽과 저쪽을 느리게 배회하며 다른 세계와의 경계선에 미끄러지듯 들어선 독자들은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해있다.
“일 없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사는 것이 지겨워졌을 무렵,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주요투자 은행중의 하나인 ‘베어스턴스’가 헐값에 매각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렇게 ‘2008 세계 금융 위기’라고 불리우게 되는 것이 시작되었다.”
강렬한 암시의 힘을 지닌 이 마지막 문장 옆엔 인적 없는 40st. lowery 지하철역의 플랫 폼 사진이 실렸고 거꾸로 페이지를 넘기면 퀸즈 한인타운의 한양수퍼마켓이 찍힌 사진이 실려 있다. 마치 이 사진들은 100년 전이나, 100년 후나 변하지 않을 뉴욕 지하철역의 모습 혹은 그게 몇 살이든, 고국을 떠난 지점에 머물러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의식을 증명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 부분은 되풀이되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걸까? 텅빈 지하철역과 거대한 한인수퍼마켓은 아메리칸 드림이나, 천국의 낯선 실체인가?
천국은 없다. 지겹도록 보게되는 성공이나 야망이 담긴 사진도 없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은 그의 미래를 뒤로 하고 그는 뉴욕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필름 카메라를 메고 자신을 찾는 것 말곤 아무런 목적없는 산보를 되풀이했다. 어느 곳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의 눈길이 머물던 순간이 그가 걸어간 길을 만들어냈다.
"사진가가 직접 디자인한 사진집"
학부때, 위상수학 시험에서, 주어진 한 수학정리의 아름다움을 논하라는 보너스 문제가 있었다.
대부분의 수학정리들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상과는 그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숫자는 없고, 그냥 평범한 문장같은 외형이다. 물론, 수학 용어와 기호가 같이 쓰인다.
예를 들면 이렇다.
“Compactness is a topological invariant.”
특히, 이런 식의 간결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수학정리에는,
언어로는 전할 수 없는,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진리와 자취로부터 은은히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사진책을 만들기로 마음먹고, 시간이 흘러 하나 둘 실제로 구체화되어 가면서,
선택해야 할 일이 점점 늘어났다. 디자인 이론에 무지하니, 처음부터 내가 하고 싶은대로 그냥 했다.
규칙같은 것들은 무시하고, 주변의 쉽게 이용 가능한 자원들을 이용해서,
내 손으로 직접 이리저리 해 보면서, 내 눈에 좋아보이는대로 정했다.
이미지와 글의 위치와 크기, 매끈 푸석한 종이의 질감, 이미지와 글에 어울리도록 고른 글꼴,
영문과 국문 단락의 모양, 표지도 따로 없는 만들다 만 듯한 겉모습,
아무렇게나 쓴 듯한 붓글씨의 제목, 전체 판형의 크기와 비율, 거의 아무 것도 없는 듯한 표지,
그리고 글과 사진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조금이라도, 간결한 수학정리와 같은, 그런 점을 지닌 책이 되길 바랐다.
신정현
신정현
미 중서부의 옥수수밭 한 가운데에 있는 어느 대학원에서 수학을 공부하며 몇 년을 보냈다. 2007년 학교를 그만두고, 뉴욕 써니사이드에 머무르며, 사진들을 촬영했다. 대부분 라이카 M6와 감도 400의 흑백필름을 사용했다. 2020년, 류가헌에서 <기약오차다항식> 개인전을 열었다.
제목 : 기약오차다항식 irreducible quintics
출간일 : 2020년 5월20일
저자 : 신정현
판형 : 240*200
제본 : 반양장
언어 : 국문/영문
페이지수 : 84쪽
정가 : 35,000원
ISBN : 978-89-98043-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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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오차다항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