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탄 NOTAN]
필립 퍼키스의 마지막 사진집
1만1천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스승과 제자.
그것은 지구 반대편까지의 거리가 아니라, 대화의 깊이다.
_박미경 (갤러리스트, 작가)
75년 동안 사진가로 살아 온 필립 퍼키스는 2007년 한 쪽 눈을 실명하고 양쪽 시력이 모두 악화된 2021년 말, 더이상 암실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사진 중단을 선언했다. [사진강의 노트]를 시작으로 스승의 사진집을 7권 만들어온 제자 박태희는 스승의 중단된 사진 작업이 이야기로 지속되도록 15주간의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의 가장 기억나는 장면들이나, 군대 시절 이야기 같은 인생 전반에 관한 질문부터 가르치는 직업이 예술작업에 도움이 되는지, 자신의 사진에 대한 글을 사진가가 직접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같은 구체적인 질문들을 매주 이메일로 보냈고 토요일 전화통화로 1시간 가량 이어진 답변을 녹음했다. 그의 아내이자 예술가인 시릴라 모젠터가 녹취된 원고를 반복적으로 읽어주었고 필립 퍼키스가 직접 책에 들어갈 내용을 발췌했다.
인생의 여러 시기에 찍은 오랜 필름들을 점검하며 인화를 하고 있었다. 많은 고민이 있었고 시릴라와 상의 끝에 작은 자동 카메라로(라이카로는 더 이상 숫자를 볼 수 없었기에)— 매일 사진을 찍고 작업의 질이 떨어질 때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기로 결정했다. 시릴라가 돕기로 했다. 1년을 예상했는데 결국 16개월 동안 지속했다. 이 작업에서 고른 사진들을 책에 실었다.
P13
필립 퍼키스는 시력의 악화를 예감한 2019년 말 부터 하루에 한장씩 사진을 찍고 인화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년 6개월간 지속된 마지막 사진 작업 67장 가운데 33장이 [노탄]에 실렸다. [노탄]은 <서문>, <대화>, <사진과 이야기들> 총 3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고 <서문>에서 ‘노탄’이란 생소한 제목에 대해 설명한다.
노탄은 음양의 원리처럼 주제와 배경 중 어느 것도 우세하지 않은 일본의 디자인 개념이다. 검은색이 흰색보다 중요하지 않고 흰색은 검은색보다 중요하지 않다. 교토에 있는 갈퀴 모양의 정원에 대해서도 생각했는데, 정원의 무언가 다른 것들보다 더 ‘중요’ 하게 부각되면 그 정원은 실패한 것이다. 발레를 볼 때, 특히 파 드 되에서, 두 무용수의 몸과 몸 사이의 모양은 각자의 몸 자체의 모양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P17
이어서 그는 오랫동안 예술과 주제의 관계에 관심을 쏟았다고 밝힌다. ‘무엇’을 찍어야 하는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무엇’에 대한 묘사와 추상이 만들어내는 긴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력이 악화되는 동안, 그는 자신의 현실을 악화가 아니라 변화로 받아들이며 사진에서 주제가 차지하는 의미를 오래 전에 발견한 [노탄]의 개념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존 케이지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인용으로 서문을 마무리하며 제목의 의도를 짧고 강렬하게 요약해낸다
[대화]편에는 사진을 시작하기 전부터 마지막 사진 작업을 끝낸 시점까지, 생애의 사이 사이를 관통하는 이야기들이 부유하는 공기처럼 우리 곁을 맴돈다. 질문을 적시하지 않고, 먼 곳에서 보이는 풍경처럼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채취해 드러내기에, 마치 우연히 발견한 낡은 사진처럼 독자에게 제시될 뿐 몰입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음조가 맞지 않게 연주하듯 이 말하는 방식 속에 명징하게 증명할 수 없는 삶의 비밀이 담겨 있다면 어떨까. 다른 모든 것과 분리된 각각의 프레임들이 벽돌처럼 쌓여 직조해내는 세계, 나즈막하게 들려오는 가장 사적인 순간들로부터, 목적을 지니고 길을 잃고 떠돌아다닌 한 사진가의 궤적이, 그 의도가 묵직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사진과 이야기들]편에는 사진들과 더불어 5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사진들은 주로 집 주변과 작은 공원에서 촬영한 것이다. 직접 암실에서 인화한 사진들에서 최종 선정된 33장과 사진들 사이에 사진처럼 자리한 5편의 이야기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변처럼 읽힌다. 한편에는 예술이 있고 한편에는 삶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증언.
그가 포착하는 선율은 점점 무조에 가까워지고 템포는 점점 느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그가 노년에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육체와 영혼의 활력이 줄어들어 관조하는 자의 시선으로, 보다 정적인 세계로
옮겨갔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변화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떨림을 찾아 빈 공간을 떠도는
순례자이므로 그 틈새로 더욱 깊이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 넓은 광야는 더 많은 정적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는 계속 걸어가고 있다.
_최원호 ([혼자가 되는 책들] 저자)
바라본다는 것, 사진을 찍는다는 것, 암실에 있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 요리한다는 것, 인화한다는 것, 앞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경험한다는 것 … 대체 이 모든 작업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1935년생 필립 퍼키스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방식이 작업이란 사실을 여전히 증명해 보이는 중이다. 그 작업이 무엇이든, 만약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보이지 않는 고통 마저도 바라보는 작업으로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초라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야기하자면 오로지 작업의 실행 밖에 답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잃어버린 빛으로 자신의 컴컴한 내부를 환하게 비출 때 바라보던 나는 빛 속에 있게 될 것이다. 필립 퍼키스가 말한 ‘바라보기의 신비’다. 하루 종일 앉아 자신에게 주어진 육체의 고통 마저도 바라본다는 이 눈 먼 사진가는 오직 바라보기를 통해 삶의 신비를 깨닫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필립 퍼키스는 마지막 사진집 [노탄]으로 사진가로서의 임무를 마무리하고 있다.
노탄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필립의 자유로움이었다. 태희는 ‘뼈만 남은 것 같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두려워 마지 않는 그런 자유 아닌가.
_빈센트 만지 (사진가)
[차례]
서문
대화
사진과 이야기들
저자소개
[저자] 필립 퍼키스 Philip Perkis
“1957년 공군으로 복무할 때 사진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만두지 않았다. 강의는 60년대부터 내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여전히 고집스런 모더니스트로 남아 있다.”
1935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필립 퍼키스(Philip Perkis)는 공군에서 기관총 사수(tail gunner)로 복무한 후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San Francisco Art Institute)에서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안셀 애덤스(Ansel Adams), 존 콜리어 주니어(John Collier Jr.)에게 사진을 배웠다.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40년간 사진학 교수로 재직하며 사진학과 학과장을 역임했으며,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chool of Visual Arts), 쿠퍼 유니언(The Cooper Union)에서도 강의했다. 50년간의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Teaching Photography, Notes Assembled』(2002)를 집필했고 한국에 『사진강의 노트』(2005)로 번역 소개되었다.
2007년, 망막 폐쇄(retinal occlusion)로 인해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2020년 오른쪽 눈의 시력 상실로 작업을 중단할 때까지 사진 촬영과 인화 작업을 계속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 33점이 2009년부터 그의 사진집을 한국에서 출판해 온 제자 박태희와의 15주간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편집된 텍스트와 함께 《노탄NŌTAN》(2024)에 실렸다.
예술가들에게 수여하는 구겐하임 재단, NEA, CAPS 의 지원금을 받았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뉴욕 현대 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뮤지엄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사진집으로 『워릭 마운틴 시리즈Warwick Mountain Series』(1976), 『인간의 슬픔The Sadness of Men』(2008), 『한장의 사진, 스무 날, 스무통의 편지』(2014), 『바다로 떠나는 상자속에서』(2014), 『멕시코』(2019) 그리고 시릴라 모젠터와 함께 만든 『옥타브』(2020)가 있다.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로 <바라보기의 신비 Just to See, a Mystery: A Film Portrait of Philip Perkis>(2016)가 제작되었다.
박태희 (옮긴이)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필립 퍼키스에게 사진을 배웠다. 사진은 평생의 작업이라 여기며 만들고 싶은 책을 스스로 만들고자 안목출판사를 설립했다. 저서로 『사막의꽃』과 『사진과책』이 있다.
[리뷰] _ 최원호 [혼자가 되는 책들]의 저자
노탄NŌTAN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 따르면 노탄은 일본의 오래된 디자인 개념으로, 음양의 원리처럼 주제와 배경 중 어느 쪽도 우세하지 않게 완전한 균형을 이룬 상태를 뜻한다. 예를 들어 어느 정원에 속한 무언가가 정원 안의 다른 것들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면 그 정원은 실패한 것이다... 책 앞에 실린 이 이야기를 읽자 내가 사랑하는 라디오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만든 <북쪽의 생각The Idea of North>이다.
<북쪽의 생각>은 아주 추운 캐나다 북부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인터뷰한 음성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굴드 자신이 ‘대위법적 라디오’라고 부른 연출이다. 조근조근 이어지는 기차 소리 위로 인터뷰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겹치고 섞이는데, 이때 각각의 목소리는 고유한 주제이자 악기가 된다. 두 개 이상의 주제가 합쳐져 구축하는 새로운 구조, 그것은 말 그대로 하나의 푸가다. 그리고 각 음성은 이렇게 푸가의 일부가 되는 순간 의미로부터 벗어난다. 예를 들어 북극의 자연을 찬미하는 목소리와 긴 겨울의 고독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겹쳐질 때, 두 개의 증언‘이었던’ 것은 더 이상 알아들을 수 없게 변함으로써 순수한 소리-이미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청취자는 그 목소리들의 과거를, 다시 말해 각 목소리에 회상과 주장이 담겨 있던 순간들을 기억하지만, 푸가의 일부로 변모한 음성들은 더 이상 의미를 생산하지 않는다(혹은 할 수 없다). 그때부터 그 목소리는 하나의 제스처이자 콘트라스트로 받아들여진다. 높낮이, 간격, 길이, 강약. 즉 오직 리듬인 것.
이런 식으로 굴드는 메시지를 담은 목소리들을 가져온 뒤 그 의미를 지움으로써 투명한 이미지로 탈바꿈시킨다. 달리 말하면 이 사운드 다큐멘터리는 점점 겹쳐지고 두터워질수록 오히려 더 투명해진다. 굴드가 종종 자기 예술 세계를 비유하고자 언급했던 ‘북극’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처음에는 구상이었더라도 이내 자기 몸을 뒤덮고 있던 의미를 털어 내고 추상이 되어 가는 것들. 아주 먼 북극으로 향하면서 점점 줄어드는 인간들. 아무런 표제도 목적도 없는 청정한 표면을 점점 더 드러내는 이미지들. 더욱 완벽한 흰색을 향해 다가가는 풍경. 이 여정의 종착지(굴드에게 있어 이곳은 바흐와 쇤베르크의 음악이 다다르는 곳과 일치한다)에는 의미의 불모지에서 자라나 오로지 감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이렇게 구상이 사라져 버린 광막한 풍경 속에 머물다 보면 거기서 새로운 상념이 피어나고, 그 상념으로부터 의미가 태어나고, 그때 구상은 다시 시작된다. 추상과 구상이 계속 서로를 낳고, 상대를 지우거나 스스로 사라지면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시간의 흐름에 올라탄 청각 예술 속에서, 구상과 추상은 음양의 흐름처럼 서로에게 옳은 때를 주고받으며 오고 가는 것이다.
필립 퍼키스와 박태희의 대화가 담긴 <노탄>의 본문 역시 이런 흐름 속에 담겨 있다. 퍼키스는 매번 한 시간이 넘는 통화 내용을 복기하면서 수 페이지, 때로는 한 페이지 안에 담길 만한 문장들만을 남겨 놓는다. 그리고 이 문장들은 때로 한 페이지가 넘기도 하고 때로는 한 문장만으로 이루어진 단락들로 엮여 있다. 퍼키스가 대화에서 모든 맥락을 편집해 냈기 때문에 녹음 순서대로 늘어놓아진 이 단락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는 알 방도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들은 내러티브를 형성하지 않는다(혹은 할 수 없다). <노탄>에 담긴 모든 서술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고, 독자는 이 책에 담긴 대화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떨어지는 비처럼 한 방울씩 맞게 된다. 독자들은 하나하나의 빗방울 즉 각 단락이 각자 빚어 낸 이미지는 알아볼 수 있지만, 그 이미지들이 어떻게 생겨났고 무엇을 지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저 모든 선명한 빗방울 가운데 이름이나 목적을 가진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탄>은 구상을, 이야기를 제공하지 않는 책이다. 무심하게 빛나는 순간들만이 계속되고 또 계속된다.
독자는 이 뜻 없이 아름다운 에피소드와 잠언들 사이에서 한참을 머무르게 된다. 마치 중심 선율이 없이 모든 음이 서로의 배경이 되며 중심이 음푹 팬 공간을 형성하는 존 케이지의 실내악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다(그러고 보니 이 책의 서문은 존 케이지를 인용하며 끝난다). 청취자의 의식을 서둘러 붙잡으려는 주 선율이 없으므로 존 케이지를 듣는 이의 의식은 편안히 소리-공간 속을 거닐 수 있다. 마찬가지로 <노탄>의 독자는 세심하게 선별된 뒤 의미의 높낮이 차이가 없이 평등하게 병렬된 퍼키스의 과거와 오늘 속을 거닌다. 부드럽게 굽고 닳은 그의 과거와 조금씩 시력을 잃어 가는 그의 오늘은 모두 거의 고요하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차분하다. 이런 평정 상태는 퍼키스가 찍은 사진들, 특히 후기의 사진들을 떠올리게 한다. 프레임 속 어느 형태가 다른 형태를 침범하거나 장악하지 않는, 만물이 자기 자리에서 가만히 머무르며 고요한 조화를 이루는 사진을 찍어 왔던 만년의 퍼키스는 글을 쓸 때도 그와 똑같은 움직임과 시선을 선보인다. 자신의 인생을 여러 롤에 담은(녹음한) 다음 천천히 몇 프레임을 골라 내(편집해) 인화한(책에 남긴) 것이다. 그가 거의 평생 수행해 온 행위들, 즉 풍경을 관찰하고 셔터를 누를 때부터 인화지에 떠오르는 잠상을 바라볼 때까지의 움직임과 선택과 기다림이 이 책의 글자들과 문장 부호 속에 묻어 있다. 소설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예술가라는 존재 자체가 자연스러운 존재의 대척점에 있는 것, 즉 하나의 인공물에 해당한다고 쓴 바 있다.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는 궁극적으로 피아노가 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퍼키스 역시 하나의 인공물 즉 카메라와(혹은 사진 작업이라는 인공-과정과) 분간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무념의 작업, 반 자동화한 촬영-현상-인화적 행동 속에 담긴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의미의 종말이 아니다. 거기 담겨 있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퍼키스는 어느 날 암실에서 인화지 위에 떠오르기 시작한 잠상을 보다가 하얀 코끼리가 나오는 시를 떠올린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 사진을 생각하다가 그냥 그 언어가 나왔고... 네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너는 네 자신이 되고 고요해지며 언어가 네게 온다... 아마도 그 언어는 사진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고, 아마도 사진을 설명하는 건 아니라서 그 사진이 그저 네 마음에 작동한 것일 수도 있어... 분명 해볼 만한 가치가 있어.” 그에게 있어 사진을 ‘한다’는 행위는 최종적으로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그 이미지 속을 맴도는 코드 가운데 나와 조응하는 것들을 만나 하나의 언어를 떠올리는 일이다. 그 새 언어는 예술 작품의 창작자가 만들어 놓고 전달해 주는 게 아니다. 그것은 감상자가 자기도 모르게 채워 넣게 되는 공백에서 스스로 태어난다. 퍼키스가 대화의 내러티브를 삭제한 이유는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떠올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며, 이는 그가 평생토록 사진을 통해 추구해 왔던 것과 같다. 이 책을 보는 당신 자신의 마음에서 무언가를 꽃피우는 것. 예를 들어 <노탄>에 나오는 영원에 관한 두 줄짜리 단락은 그 앞뒤에 몇 분의 대화 혹은 침묵이 있었는지를 알려 주지 않음으로써 무정형의 공백을 얻게 되는데, 이 측량할 수 없는 침묵은 영원에 관한 언급과 조응하면서 시간에 관한 관념 어딘가를 살짝 무너뜨린다. 나는 그 무너진 틈에서 싹튼 나 자신의 상념들을 관찰하며 오래도록 그 두 줄 안에 머물렀다.
필립: 토요일에 얘길 더 할 수 있지? 그렇지?
태희: 그럼요, 토요일은 영원해요.
이렇게 아주 작은 영원들이 빈 행마다 박혀 있는 1부가 지나고 나면 퍼키스가 마지막으로 그의 집 근처에서 찍은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사진들에는 의미의 초점이 사라져 있어서 언뜻 보아서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대체 뭘 말하려는 거지?’), 하지만 1부에서 내러티브의 공백 사이를 무념의 이미지처럼 채우고 있는 문장들을 계속 읽어 온 독자들은 사진의 뉘앙스가 1부의 텍스트와 거의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퍼키스는 자신이 포착한 이미지를 의미로부터 떨어뜨리려 하고, 그러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가능한 한 커다란 고독과 침묵을 부과해 왔다. “그래서 작업 과정은 주제보다는 톤과 구조에 대한 거야.” 이 소박한 고백에는 그가 온 생애 동안 쏟아부은 의지와 소망이 담겨 있다. 이러한 영혼이 포착한 사진을, 또 그와 꼭 닮은 텍스트를 담고 있는 <노탄>은 퍼키스의 생애를 회고한다기보다는 그가 어떤 생각과 소망을 품고 사진을 만들어 왔는가를 방법론적으로 재현한 텍스트를 담은 책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책에 진실로 담겨 있는 건 지나간 광경들이 아니다. 퍼키스는 자신의 과거라는 새 소재를 받아 지금까지 늘 해 왔던 작업을 반복한다. 땅을 엎은 뒤 저 먼 곳에서 날아온 씨앗이 싹을 틔우길 소망한다. <노탄>은 그가 평생 수행해 왔던 오늘들이다. 이 마지막 책 속에서 퍼키스는 영원한 오늘 안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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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탄 NŌT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