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의세상 WORLD OF DEW]
빈센트 만지 사진집
빈센트 만지는 작은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필름을 현상하고 스캐너로 파일을 만들고 디지털암실(포토샵)에서 자신의 톤과 음을 조절한 후 잉크젯프린터로 인화한다. 이 모든 공정이 사진가의 손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데, 사진이란 촬영부터 최종인화까지, 모든 공정이 선택으로 이루어지며 작업이란 정신적이며 물리적인 노동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그는 프린트를 편집해서 제본한 후, 여러 권의 책을 만들고 몇몇 지인들에게 선물해왔다. 세 번째 책을 받았을 때 갤러리에 이 사진들을 보여준 적이 있는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것, 작가로서 이름을 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가까운 사람들과 자신의 작업으로 소통하는 것이라고. 그의 야망은 어떤 예술가보다 거대하다. 2024년 10월, 마침내 지난 시간의 사진들이 <이슬의 세상>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빈센트 만지의 <이슬의 세상>은 18년간의 작업에서 추출된 것이다. 이때 추출이란,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순수용액을 걸러내기 위해 깔때기를 놓고 걸러내는 작업처럼, 숱한 실패의 반복, 불확신의 밤, 고독, 그리고 마침내 걸러진 일정 용량의 산물을 뜻한다. 결혼하고 아이낳고 뉴욕과 이스탄불을 오가며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무엇보다 창작을 위한 작업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 온 그의 첫 결과물이다.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이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고바야시 잇사
우리는 종종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보다 깊게 이해하기 위해, 그의 작품을 둘러싼, 예술가 스스로 남긴 모든 요소들을 의미심장하게 보게 된다. 그 예술이 사진이라면 제목부터 사진을 인화한 종이의 광택여부, 크기, 액자의 형태까지 이 모든 결정이 사진가의 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우선 빈센트 만지는 제목을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 <이슬의 세상>으로 삼았다.
헛헛한 살아감에 대하여 그 누구라도 멍들지 않은 가슴 있겠는가.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이 생의 무정함은 변함없고 이슬처럼 사라지는 이 생의 덧없음도 변함없고 그렇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살아있고 그것의 증거가 사진이고 천년전의 싯구가 살아남은 것처럼 어떤 순간들은 죽어도 죽지 않을 것이다. 놓을 수 없고, 놓칠 수 없는 이 삶의 애절한 의지를 묵묵히 사진 작업으로 보여주는 빈센트 만지의 작업 제목으로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은 생각할 수 없다.
불가사의한 질문으로 채워진 일상의 순간들
전혀 모르는 타인들로 넘치는 거리의 좌표 위에 무작위로 늘어선 인간들, 그들의 팔, 다리, 시선의 방향, 쇼핑백, 그림자마저 정밀하게 세공된 조각들처럼 생생하게 살아오르며 모든 존재의 자질을 보여줄 때 불현듯 세상과 내가 빈틈없이 생생한 관계를 맺는다. 이것은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 눈앞의 세상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서는 포착할 수 없는 순간이다. 뉴욕에서 이스탄불까지 기나긴 길을 걸어서 내 곁에 도달한 이 순간들, 한 사진가의 예민한 인식이 포착한 일상의 모습들은 불가사의한 질문으로 채워진다.
한 줄기 빛 속에 드러난 먼지 한 톨과 거리를 분주히 걸어가는 한 행인의 모습이 어떻게 같은 속도로 마음에 와닿는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간들이 사진 속에서 어떻게 영원히 울려 퍼지는가? 초록은 숲의 색이기도 하고 죽음의 색이기도 하고, 가련한 육신들, 쇼핑카에 실린 인간의 그림자, 유리 한 장을 사이로 나뉘어진 이생과 저생,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분주하게 걸어가는 행인들, 희미한 슬픔이 안개처럼 퍼지고, 푸른 저녁이 거리마다 내리고, 무거운 수레와 육신, 우리는 얼마나 더 고단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축축이 비에 젖은 도로 위에서 눈앞에 다가온 어둠을 응시하는 사진가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모두 세상으로부터 감추어진 마음을 갖고 있다. 사진은 그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사진의 침묵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감지한다. 그가 직접 만든 책에 쓴 구절처럼, “순간이 닻을 내린다.”
[저자] 빈센트 만지 Vincent Manzi
빈센트 만지는 미국 사진가로, 뉴욕 대학과 스쿨오브비주얼아트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이슬의 세상>은 빈센트 만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뉴욕과 고향인 이스탄불을 오가며 살아 온 18년 여의 시간 속에서 얻어진 사진들이다. ‘창작을 위한 작업이 우리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일상 속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게 했다. 작은 35mm 카메라와 컬러 필름을 사용해 작업하는 빈센트 만지는, 필름을 현상하고 스캐너로 파일을 만들고 디지털암실(포토샵)에서 자신의 톤과 음을 조절한 후 잉크젯프린터로 인화한다. 2022년, 부산 안목갤러리와 서울 류가헌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던 빈센트 만지는 필립 퍼키스의 제자로, 오랫동안 선생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과 사진 속에서 계승하고 있다.
[리뷰] 빈센트 만지의 사진 _ 필립 퍼키스
컬러 사진이 대중화되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자, 톤과 분위기란 사진의 이상이 사실과 구성으로 대체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진이란 매체로 보면 그게 잘된 것이란 확신은 들지 않는다. 우리가 톤을 생각할 때, 수많은 회색의 계조와 컬러의 계조를 말하고, 소리의 톤, 말할 때의 톤과 분위기를 얘기한다. 빈센트 만지는 여전히 톤과 분위기를 컬러 작업속에서 다루고 있는 몇 안되는 사진가들 가운데 한명이다. 색은 그의 세계를 전혀 잡아먹지 않았다. 톤과 분위기가 없다면, 예술도 없다. 특별한 종류의 톤일 필요는 없다. 베르미르, 아그네스 마틴 그리고 앨리스 닐 이 세명의 예술가를 생각해보라.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그 작업들은 전부 제각각이다. 빈센트의 사진들은 대상을 사용해서 - 그것이 사람이든, 도시든, 혹은 자연세게든 - 신비의 감각을 창출해낸다. 그의 작업은 심오하다.
When color photography became more available and simple to do, I think that the idea of tone and atmosphere gave way to the idea of fact and structure. I'm not sure that's the best thing that ever happened to photography. When we think of tone, we talk about the tone of greys and colors and sounds and speaking tone and atmosphere. Vincent Manzi is one of the few photographers who still deals with tone and atmosphere and works in color. Color hasn't taken over his world. Without tone and
atmosphere, there is no art. Not necessarily a certain kind of tone; consider Vermeer, Agnes Martin, and Alice Neel-—who all create an atmosphere and they're all very different. Vincent's photographs, it seems, use subject matter— whether it's people, the city, or the natural world— to create a sense of mystery. His work is serious and profound.
[리뷰] 백묵가루처럼 뿌려져 있는 눈 _ 서영기 [명료한 오후] 저자
백묵가루처럼 뿌려져 있는 눈, 산란스러운 빛과 그림자, 나무들. 연기와 안개 속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여러 표지와 대상들, 그러한 것들이 보이는 태도와 표정....,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 사람은 자신의 세상이 이처럼 작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이 만드는 움직임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미지를 빠르게 삭제하는데 익숙한, 요컨데 이미지의 소비가 더 중요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태도가 낯설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 사진들 속에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나는 다른 의견이 있는데, 이 사진들은 마음의 경계 어딘가에서 격렬한 무엇인가가 부딪치면서 하나의 내면이 반응을 하고 변화하는, 어떤 우발적 사건이 펼치는 공간 속의 움직임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흥적이면서 극적으로 진행되고 리듬을 타는 사투는 언제나 경계에서 벌어진다.
그는 어느 순간. 그 짧음의 마디 속에서 움찔하며, 놀라면서,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생각들과 사물을 마주한다. 진정으로 만나게 된다면 생각들과 사물들과 환경은 무엇인가를 지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암시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사진 속에서 빈센트 만지는 그만의 경계에 서 있다.
거리와 늪지, 병원, 바다, 집(사실 암시들 속에서 이것들은 하나다)들은 경계의 안쪽으로 이동하고 빛은, 색은, 형태는, 동작은, 질감은... 합쳐져서 그만의 단층들을 만든다.
그의 작업은 수도자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시대에는 성상이. 그 이미지가, 그 물음이 하루의 삶을 채우곤 했었다.
Snow sprinkled like chalk powder, scattered lights, shadows, trees, various signs, objects inconspicuous in the haze and mist. The person who is interested in their gesture and countenance seems to believe that his world is made up of such insignificant things and the movements they make.
This attitude towards the world is unfamiliar to us. We are accustomed to erasing images recklessly; after all, we live in an age when the consumption of images has become an obsession.
However, can we, without any qualms, say that nothing is going on in these pictures? I have a somewhat different perspective. I think these photographs are about movements inside a space where an unanticipated event occurs. An aspect of his inner side responds and changes as something intense from somewhere on the borderline of the mind is confronted. It goes on to its own rhythm in an improvised, dramatic manner.
The battle always unfolds on the borderline. At some point, as he flinches and gets startled in the joint of brevity, he encounters thoughts and objects from nowhere. If the encounter is genuine, the thoughts, objects, and surroundings do not suggest something specific. Rather, numerous implications
take over.
In the photographs, Vincent Manzi is standing on his own borderline. A street, swamp, hospital, ocean, house - These are the same in a implication - move inside the borderline; light, color, shape, gesture, texture merge and make several layers of his own.
His work reminds me of a life of an ascetic. In a certain era, an icon, its image, and its question used to fill a whole day of life.
[인터뷰] _ peach by peach magazine (2022.4)
1. 뉴욕과 이스탄불을 오가며 작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 곳을 한 장의 사진으로 연결하거나 비교하는 것인가요?
제가 촬영하는 뉴욕과 이스탄불은 모두 제가 살고 있는 장소이고 집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비교하고 논평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제 목표는 보는 방식을 발전시키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서로 다른 장소와 주제들이 연결됩니다.
2. 언뜻 보면 일상적이고 평범할 수 있지만,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보면 매우 독특한 순간과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순간에 셔터를 누르실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짧은 대답은 셔터를 많이 누르는 것입니다. 더 집중해서 볼 수록 모든 것이 평범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바깥 세상에서 만나는 많은 기회들을 촬영하면서 현재 삶의 흐름에 다가갈 수 있고 그 후에 이루어지는 편집은 증류 과정과 같습니다. 8롤의 필름에서 10장의 사진이 나오고 수년에 걸쳐 뽑아낸 수백 장의 사진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집니다. 큰 결정은 편집할 때 이루어지기 때문에 셔터를 누르는 동안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잊고 싶습니다.
3. 사진집을 직접 만드셨습니다. 오프라인 전시나 온라인 포스팅이 아닌 사진집을 먼저 만든 이유는?
우리는 앉아서 사진집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지요. 사진과 사진집, 커피가 어우러진 안목 갤러리도 이런 의도를 장려하고 있지요. 제 사진은 인화물로 보여질 때 살아나고 모니터에서는 다소 생기를 잃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어떤 사진가들의 사진은 모니터에서 훨씬 좋아보이기도 합니다. 잉크로 인화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특별한 분위기를 더 잘 맞는 거지요. 사진집을 만드는 건 제 작업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솔직하게 반응할 것이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진집을 보내고 이것은 제가 계속 작업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4. 작품의 제목은 어떻게 정하나요? 또한,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개별적인 사진 제목은 대개 위치나 지명입니다. 제가 만든 책이나 챕터의 제목은 좀더 추상적인 것으로 늘 시각적이고 명확한 무엇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슬에 대한 나의 경험은 반짝임과 증발입니다. 고바야시 잇사의 시* 번역본에서 따온 제목입니다.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이 시*가 저한테는 대단히 각별해졌는데 잘 표현할 수는 없지만 요점은 이 모든 것의 덧없음과 일시성입니다. 어느 시점에서 제 작업은 그 인식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시간적 본성을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는 매체가 사진이고 저는 그런 관점에서 모든 일을 경험하는데 가장 관심이 있습니다. 계속 바깥을 지켜보지 않는다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요.
5. 어떤 카메라 모델과 필름을 가지고 다니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항상 Summicron 또는 Zeiss C Biogon 35mm 렌즈가 장착된 Leica M5를 사용합니다. 가끔 Contax T2도 사용하지요. 냉동고에는 Kodak Portra 400가 가득 있습니다. 집에서 현상하고 습식 마운트 방식으로 필름을 스캔하며 포토샵으로 조절하고 잉크젯 프린터로 인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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