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Mexico
필립 퍼키스 Philip Perkis
25년의 시간이 만든 사진집
992년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받은 미국 사진가 필립 퍼키스(Philip Perkis)는 3년에 걸쳐 총 8개월 동안 멕시코에 머물며 사진을 찍었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 그는 스스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멕시코의 지독한 가난을 찍지 않을 것, 관광객의 냉소적인 시선을 담지 않을 것, 원주민을 이국적인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
스페인어를 하지 못했고 멕시코의 역사에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상하리만큼 그곳에 끌렸다.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그에게 멕시코는 낯선 곳인 동시에 뜻밖의 고향 같은 편안함을 주는 장소였다. 그는 멕시코를 설명하거나 기록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본능과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카메라를 들었다.
당시 촬영한 사진 가운데 일부는 인화되어 전시에 소개되고 첫 모노그래프 『인간의 슬픔 The Sadness of Men』에도 수록되었다. 멕시코 사진의 거장 마누엘 알바레스 브라보(Manuel Álvarez Bravo), 미국 사진가 헬렌 레빗(Helen Levitt)과 함께 《The Spirit of Mexico》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많은 멕시코 필름은 현상된 네거티브 상태로 남았고, 제대로 인화되지 않은 채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15년, 80세가 된 퍼키스는 평생 촬영해온 필름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쪽 눈의 실명과 두 차례의 심장 수술, 신장 이식 수술을 지나온 뒤였다. 그는 한 번도 제대로 인화하지 않았던 멕시코의 네거티브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러나 25년 전의 네거티브를 바라보는 사람은 더 이상 그 사진을 촬영했던 당시의 퍼키스가 아니었다. 그는 사진 속 대상 자체보다 이제 그 사진이 자신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3년에 걸쳐 거의 매일 암실에서 멕시코 필름을 인화했다. 약 200장의 프루프 프린트를 만들고, 그 가운데 70장의 최종 인화를 완성했다. 놀랍게도 그가 새롭게 선택한 사진들 가운데에는 25년 전이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사진들이 있었다. 그 사이 한 사람에게 축적된 시간과 경험, 기억과 상실이 사진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퍼키스에게 카메라는 자신을 찾아가는 도구였으며, 사진은 소통의 결과물이었다. 그가 말하는 소통은 단지 사진가와 피사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감정과 기억,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이 어느 순간 불가사의하게 만나 사진과 삶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소통에 가깝다. 그것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시작되지만, 수십 년 뒤 네거티브를 다시 바라보고, 한 장의 사진을 선택하고, 암실에서 인화하는 순간에도 계속된다.

사진은 언제 비로소 한 장의 사진이 되는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일까. 필름이 현상되었을 때일까. 인화되었을 때일까. 아니면 사진가가 오랜 삶을 지나 다시 그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 사진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멕시코 MEXICO』가 1990년대에 만들어졌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진들로 이루어진 책이 되었을 것이다. 촬영 이후 25년 동안 퍼키스에게 축적된 삶의 경험과 감정이 과거의 사진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멕시코』는 단순히 1990년대의 멕시코를 기록한 사진집이 아니다. 한 사진가의 과거와 현재가 한 장의 사진 안에서 다시 만나는 과정이며, 사진이 시간과 기억, 그리고 한 인간의 삶과 어떻게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촬영하는 순간과 다시 바라보는 순간 사이에 놓인 25년.
『멕시코 MEXICO』는 그 시간마저 사진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필립 퍼키스의 깊은 사진적 사유를 담고 있다.

Philip Perkis (1935-2025)
필립 퍼키스(Philip Perkis)는 미 공군에서 복무하던 시절 사진을 시작했다. 제대 후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안셀 애덤스(Ansel Adams), 존 콜리어 주니어(John Collier Jr.)에게 사진을 배웠다. 이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 사진과 교수로 약 40년간 재직했으며 사진학과 학장을 역임했다. 뉴욕대학교(NYU),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VA), 쿠퍼 유니온(Cooper Union) 등에서도 사진을 가르쳤다.
구겐하임 재단을 비롯해 NEA, CAPS 등의 지원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뉴욕 현대미술관(MoMA) 등 여러 미술관의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주요 저서와 사진집으로 『사진강의노트 Teaching Photography』, 『Warwick Mountain Series』, 『인간의 슬픔 The Sadness of Men』, 『한 장의 사진, 스무 날, 스무 통의 편지』, 『바다로 떠나는 상자 속에서』, 『멕시코 MEXICO』, 시릴라 모젠터(Cyrilla Mozenter)와 함께 만든 『옥타브 Octave』, 『노탄 Notan』 등이 있다.
박태희 옮김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안목출판사를 설립해 사진책을 기획·편집·출판하고 있다. 저서 『사진과책』, 사진집 『사막의 꽃』, 『The Elephant Garden』, 번역서 『사진강의노트』,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 편역서 『필립 퍼키스와의 대화』 등이 있다.
154 pages
Hardcover
28 x 28 cm
Korean / English
500부 한정판
2 / 2019
Isbn 978-89-9804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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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Mexico
필립 퍼키스 Philip Perkis
25년의 시간이 만든 사진집
992년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받은 미국 사진가 필립 퍼키스(Philip Perkis)는 3년에 걸쳐 총 8개월 동안 멕시코에 머물며 사진을 찍었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 그는 스스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멕시코의 지독한 가난을 찍지 않을 것, 관광객의 냉소적인 시선을 담지 않을 것, 원주민을 이국적인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
스페인어를 하지 못했고 멕시코의 역사에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상하리만큼 그곳에 끌렸다.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그에게 멕시코는 낯선 곳인 동시에 뜻밖의 고향 같은 편안함을 주는 장소였다. 그는 멕시코를 설명하거나 기록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본능과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카메라를 들었다.
당시 촬영한 사진 가운데 일부는 인화되어 전시에 소개되고 첫 모노그래프 『인간의 슬픔 The Sadness of Men』에도 수록되었다. 멕시코 사진의 거장 마누엘 알바레스 브라보(Manuel Álvarez Bravo), 미국 사진가 헬렌 레빗(Helen Levitt)과 함께 《The Spirit of Mexico》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많은 멕시코 필름은 현상된 네거티브 상태로 남았고, 제대로 인화되지 않은 채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15년, 80세가 된 퍼키스는 평생 촬영해온 필름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쪽 눈의 실명과 두 차례의 심장 수술, 신장 이식 수술을 지나온 뒤였다. 그는 한 번도 제대로 인화하지 않았던 멕시코의 네거티브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러나 25년 전의 네거티브를 바라보는 사람은 더 이상 그 사진을 촬영했던 당시의 퍼키스가 아니었다. 그는 사진 속 대상 자체보다 이제 그 사진이 자신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3년에 걸쳐 거의 매일 암실에서 멕시코 필름을 인화했다. 약 200장의 프루프 프린트를 만들고, 그 가운데 70장의 최종 인화를 완성했다. 놀랍게도 그가 새롭게 선택한 사진들 가운데에는 25년 전이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사진들이 있었다. 그 사이 한 사람에게 축적된 시간과 경험, 기억과 상실이 사진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퍼키스에게 카메라는 자신을 찾아가는 도구였으며, 사진은 소통의 결과물이었다. 그가 말하는 소통은 단지 사진가와 피사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감정과 기억,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이 어느 순간 불가사의하게 만나 사진과 삶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소통에 가깝다. 그것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시작되지만, 수십 년 뒤 네거티브를 다시 바라보고, 한 장의 사진을 선택하고, 암실에서 인화하는 순간에도 계속된다.

사진은 언제 비로소 한 장의 사진이 되는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일까. 필름이 현상되었을 때일까. 인화되었을 때일까. 아니면 사진가가 오랜 삶을 지나 다시 그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 사진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멕시코 MEXICO』가 1990년대에 만들어졌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진들로 이루어진 책이 되었을 것이다. 촬영 이후 25년 동안 퍼키스에게 축적된 삶의 경험과 감정이 과거의 사진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멕시코』는 단순히 1990년대의 멕시코를 기록한 사진집이 아니다. 한 사진가의 과거와 현재가 한 장의 사진 안에서 다시 만나는 과정이며, 사진이 시간과 기억, 그리고 한 인간의 삶과 어떻게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촬영하는 순간과 다시 바라보는 순간 사이에 놓인 25년.
『멕시코 MEXICO』는 그 시간마저 사진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필립 퍼키스의 깊은 사진적 사유를 담고 있다.

Philip Perkis (1935-2025)
필립 퍼키스(Philip Perkis)는 미 공군에서 복무하던 시절 사진을 시작했다. 제대 후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안셀 애덤스(Ansel Adams), 존 콜리어 주니어(John Collier Jr.)에게 사진을 배웠다. 이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 사진과 교수로 약 40년간 재직했으며 사진학과 학장을 역임했다. 뉴욕대학교(NYU),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VA), 쿠퍼 유니온(Cooper Union) 등에서도 사진을 가르쳤다.
구겐하임 재단을 비롯해 NEA, CAPS 등의 지원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뉴욕 현대미술관(MoMA) 등 여러 미술관의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주요 저서와 사진집으로 『사진강의노트 Teaching Photography』, 『Warwick Mountain Series』, 『인간의 슬픔 The Sadness of Men』, 『한 장의 사진, 스무 날, 스무 통의 편지』, 『바다로 떠나는 상자 속에서』, 『멕시코 MEXICO』, 시릴라 모젠터(Cyrilla Mozenter)와 함께 만든 『옥타브 Octave』, 『노탄 Notan』 등이 있다.
박태희 옮김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안목출판사를 설립해 사진책을 기획·편집·출판하고 있다. 저서 『사진과책』, 사진집 『사막의 꽃』, 『The Elephant Garden』, 번역서 『사진강의노트』,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 편역서 『필립 퍼키스와의 대화』 등이 있다.
154 pages
Hardcover
28 x 28 cm
Korean / English
500부 한정판
2 / 2019
Isbn 978-89-9804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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